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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기사

  • [정읍시] 정읍시립미술관 ‘소박한 선_물 관람기’
      정읍시립미술관 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쳐있을 시민들을 위해 평범한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선물처럼 생각하며 재미있고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전시회 이름은 가족사랑 기획전시 ‘소박한 선_물’ 지난 6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이다. 아직 관람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문화접주가 지난 일요일 다녀왔다. 다행이 실내 작품도 촬영이 가능해서 스마트폰으로 몇작품 담아왔다. 매일 각기 다른 모습의 일상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은 살아가는 삶 속의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소중했다. 일하거나 휴식하거나, 모든 순간의 일상들이 요즘에는 선물처럼 다가온다.              '소박한 선물' 전시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45점을 ‘소박한 선물’이라는 주제로 준비한 이번 전시는 일상을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된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일상의 소중한 풍경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1전시실의 ‘평범한 일상의 시작’을 시작으로 3전시실의 ‘황홀한 우리들의 꿈’으로 풀어간다.      우리들의 삶 속 모습이 다양하게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모든 날의 선물처럼 생각하며 각자의 풍부한 시각으로 여유롭게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관람료는 무료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참, 연계프로그램으로 함께 받고 싶은 선물 -  받고 싶은 선물 적어보기(미술관 2층 라운지)가  진행되고 있으니 참여해도 좋을 듯 싶다.   한편 정읍시립미술관은 전라북도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지난 2015년 10월 24일 개관했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작품도 보고  다양한 경험도 즐길 수 있으며,  시민의 정서함양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도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제 2전시실 <자작나무 숲> 전영근
    • 우리동네이야기
    • 정읍시
    2020-07-30
  • [정읍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이진우 문화접주 외 산책 신청자 20여명       1. 장명동 각시다리 전설 정읍의 각시다리 전설은 조곡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두 집안의 신부를 태운 가마가 맞서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옛날 풍습에 신부를 태운 가마가 외다리에서 마주치는 경우에 먼저 다리를 건너는 신부라야 복을 받아 건강하고 아들 딸 낳아 잘 살게 된다는 속설이 있었고, 늦게 다리를 건너는 신부는 복이 달아나 가난하게 살게 되며 불행이 계속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결국 이 잘못된 풍습으로 인해 두 신부 중 한 명이 가마 싸움에 밀려 강물에 떨어져 죽게 되는 불행을 맞는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신랑은 한탄을 하게 되며, 나중에 재혼하여서도 인근 비석거리의 당간지주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신부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최근 정읍에서는 ‘각시다리’를 소재로 한 연극이 공연되고, 장명동 각시다리 공원에서 작은 문화제를 여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 각시다리 문화콘텐츠의 선두에 선 것은 이갑상 시인의 시 「각시다리 연가」이다.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 이진우 문화접주 - 옛날의 각시다리   2. 각시다리의 유래 각시다리 즉 씨교는 한자로 氏橋이다. 1918년에 나온 『정읍군읍지』에 재군내(在郡內) 입석리(立石里) 씨교(氏橋)라 기록했다. 1985년에 나온 『정주읍지』 제 1편 지지(地誌) 제 2장 하천‧평야(44~46쪽)와 제 3편 현대, 제 10장 동지(洞誌)편(586~587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씨교동(氏橋洞)의 동명 씨교는 다리 이름 씨교(각시다리⟶ 각씨다리)에서 유래하였다. 씨교에 대한 촌로들의 전설은 옛날 각시가 가마를 타고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은 곳이라고 한다. 또 정월 상원일(上元日)이면 현감이 이민을 거느리고 답교하던 다리라고도 한다. 씨교는 남도에서 새재(조령)를 넘어 정읍현아(현 정읍세무서 부근 일대)를 들어오는, 말하자면 관문의 다리이다. 지금은 작은 개울로 흐르고 있지만 옛날에는 정읍천의 본류가 이곳으로 흘렀기 때문에 큰 내(川)였다. 『정읍현읍지』 산천조에 시천(䲭川) 재읍남이라 했다. 시천은 정읍천이다. 지금의 정읍천은 옛날 치천(속칭 치내) 또는 시천이니 내장산에서 발원하는 내장천과 고당산에 발원하는 부무천이 합류하여 시가를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원래의 이름인 치천은 언제부터인지 시천으로 변하였으니, 치(鴟)와 시(䲭)는 저(氐)를 씨(氏)로 생략하고 발음도 ‘치’가 ‘시’로 된 것이다. 저(氐)라는 글자는 근본 저, 땅이름 저 등으로 풀이되고 부수는 각시씨(氏)자이다. 원래의 정읍천 유역은 송산동 앞에서 거의 직선적으로 상동아파트 부근으로 흘러 지금의 조곡천으로 내렸던 것이고, 다리의 명칭은 시천교(시천교) ⟶ 시교 ⟶ 씨교로 편의상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들어서 여러 해에 걸쳐 원래의 정읍천 유역을 지금의 현상으로 제방을 축조하고 변경시켰다. 그리고 원래의 시천(䲭川)은 언제부터인지 조곡촌(棗谷川)으로 일컫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시천의 직강화 공사로 고부에서 흘러내린 개울과 분리되면서 시천은 정읍천으로 이름이 바뀌고 조곡천이 독립된 명칭을 얻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씨교에 있는 상보에서 잔다리목을 거쳐 삼보평야로 농업용수를 흘려보내고 나머지는 중보(롯데리아 근처)를 거치고 하보(서초등학교 앞)를 거쳐 정읍문화원 앞으로 해서 정읍천 본류로 합쳐지는 과정을 거쳐 조곡천의 물줄기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현재의 조곡촌은 상동에서 발원하여 장명, 수성, 시기동 등 정읍의 도심지를 지나 정읍천에 합류한다. 조곡천은 옛날 시천의 본류였으며 정읍 삼보 가운데 상보와 중보가 조곡천에서 갈라져 나갔다. 상보는 장명동의 씨교에 있었으니 이곳에서 정읍시가지를 서쪽으로 관통하여 잔다리목에서 흘러나간다. 그리고 중보는 수성동에서 흘러나가는데 근래 도시발전으로 지형이 변하여 신흥동에서 삼보평야의 상단(上端)을 관개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35년, 1530년) 정읍현 산천조에 정읍천을 치천(鴟川)이라 기록했는데 19세기 동여도(東與圖)에는 시천(䲭川)으로 기록하고 있다. 치(鴟: 부엉이치)가 시(䲭: 접동새시)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치천교가 시천교 또는 시교로 쓰게 되고 시교는 또 기록의 편의상 시(䲭)자에서 씨(氏)자를 따서 씨교(氏橋)로 통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정읍천의 본류 즉, 옛날의 시천의 본류가 송산리에서 신경동 쪽으로 직류하여 흘렀기 때문에 하천의 폭도 넓고 수량이 많았으며, 곳곳에는 소(沼)를 이루는 곳도 있었으니 시교 아래에는 소(못)가 있었다고 한다. 씨교는 의역(意譯)으로 각시다리로 속칭되어 온 것이다. 조곡천을 복개하면서 사라진 각시다리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현재 각시다리가 있던 곳 근처에 각시다리를 테마로 한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각시다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각시다리 전설은 ‘지명 유래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 이진우 문화접주 - '정읍 골목길 詩 산책' 홍보 포스터 3. 슬픈 전설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각시다리 연가」   ------------------------------------------------------------------------------------------------------- 청사초롱 앞에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운 님 따라 고개 넘고 들녘 지나 흔들흔들 가마 속 새색시 울렁거려 못살겠네. 비석거리 지났을까 비좁은 가마 속 누가 보지 않아도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골무만 만지작 새초롬 새신랑 나귀 타고 흔들흔들 좁다란 나무다리 겨우 겨우 건널 적에 손수건 살랑살랑 어서 건너 오라시네 엎치락뒤치락 먼저 다리 건너려고 흔들흔들 가마 속 새색시 울렁거려 못살겠네. 영문 모른 새색시 분홍치마 노랑저고리 오목가슴 움켜쥐고 심장이 철렁 꽃잎처럼 흩날리다 얼음처럼 차가운 나무다리 아래로 팔랑 팔랑 고개 숙여 가라앉으시네. 고운 님 홀로 두고 어찌 가냐 하시면 누가 보지 않아도 다소곳이 앉아 있듯 그리합니다. <각시다리 연가> 이갑상   ------------------------------------------------------------------------------------------------ 2020년 5월 20일. 정읍의 1인 출판사 샘바다에서 펴낸 이갑상 시인의 첫 시집 『각시다리 연가』는 인터넷신문 정읍통문에 연재되었던 시편들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집에는 모두 61편의 시가 실렸는데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거나 희미한 자취로 남은 지난 시절의 정읍도심 풍경과 그 시절을 살아온 시민들의 정서를 담아냈다. 각시다리와 광교, 중국학교, 카페 백두산 가는 길과 영산식물원, 도둑방천과 땀때기방죽, 홀애비점방과 나무전거리, 막걸리집으로 유명했던 충남집과 광교집, 그리고 시인의 시가 걸려 있던 동천주막 등의 이야기는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여울지게 한다.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 이진우 문화접주 - '각시다리 연가' 시낭송   각시다리 연가 시집과 함께 하는 정읍 도심지 골목길 걷기는 《정읍 골목길 詩 산책》이라는 타이틀로 6월부터 10월까지 총 5회에 걸쳐 이갑상 시인과 시집을 펴낸 『샘바다 출판사』 최은희 대표, 정읍통문 대표 이진우, 시인의 초‧중‧고 12년 후배로 도심길 안내를 맡은 정일여중 교사 박래철, 기록을 맡은 시인의 후배 김복례 김제자활센터장 등 5인의 스텝이 행사를 진행한다. 이 행사에는 매회 20명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6시까지 구간별 코스를 걷고 특색 있는 식당을 찾아서 저녁밥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 을 갖는다. 6월 20일(토)에 첫 번째로 열린 행사에는 예정된 20명을 초과하는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7월 행사는 무더위를 피해 저녁시간에 야행(夜行)으로 열릴 예정이다.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각시다리 연가' 詩 산책 - 이진우 문화접주 - 중국학교터에서 쌍십절 이야기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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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정읍시] 여성들이 살고 싶은 정읍문화도시 이야기 - 에프터눈 티파티
    [문화접주활동보고서] 에프터눈 티파티 -   여성들이 살고 싶은 정읍문화도시 이야기    2020.05.30 정읍어반피크닉플레이스 - 방경은 문화접주     ' 여성들이_살고_싶은_정읍문화도시_이야기 [에프터눈 티파티] '       문화도시_정읍 을 말하다.  지방 축소, 아니 소멸을 말하면서  그 척도로 각 지역에  젊은 여성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꼽았던 책이 있습니다.    가임기 여성과 고령인구의 비율을 통해  그 지방의 소멸을 예상해 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도시에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 같은  인구 생산 외에도 도시의 존립에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연결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만 살아가지 않기에,  여성과 도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읍의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현재의 삶,  더 나은 정읍을 묻고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당신, 괜찮아요?    참석자 전원이 자신의 이름과  코로나 이후 달라진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격리와 단절로 인해 답답하다거나,  생업의 어려움으로 빚이 늘어났다, 확찐자가 됐다,  하지만 격리를 통해 나 자신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거나  국가의 존재 이유,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2.정읍에서 문화생활, 이걸 추천할께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정읍에서의 문화적 경험에 만족하고 계셨고,  특히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무료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생활문화동호회의 연주나 공연을 무료나 아주 적은 비용으로  즐겼던 경험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반면에 정읍에서의 문화적 경험과 체험이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문화적 자원으로는 정읍사, 내장산 그리고 ktx도 꼽혔네요.       3. 어떤 일을 하는지, 하고싶은지..?!        꼭 생업이 아니라 주어진 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누었는데요.  대부분 직업, 주부, 엄마 등의 일을 이야기했고  하고 싶은 일은 미뤄왔던 꿈(작가가 3명이나!!)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글쓰기 공동체라던가, 독서 모임 등을 통해서  계속해서 본인의 꿈을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잘해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아쉬움이나,  많은 일을 해내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않는다는  불만도 일부 있었네요.  많은 참여자들이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4. 여성으로 정읍을 살아가기, 어때요?        좁은 지역사회,  가부장적이고 '가족적인' 정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어떤 기억을 남겼을까 궁금했습니다.  혼자사는 여성이 관공서에 가서  등본이라도 하나 발급받을라치면  불필요한 질문이나 관심을 받았던 사례부터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채 안되는 시대에  정읍의 어느 학교 선생님이 가했던 성희롱 발언 등,  모두의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과 사례들이 쏟아졌습니다.          여성친화도시 정읍은 여성들만  살기 좋은 곳이 되자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관계지향적으로, 더 따뜻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 도시.  그런 도시가 되자는 선언이 아닐까요.  아쉬운 마음을 꽃다발에 담아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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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4
  • [정읍시] 영원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지역문화유산 답사
    코로나19의 창궐로 온 나라가 적막에 덮인 듯하다. 주민과 더불어 학생들도 가정에 갇혀 지내는 것이 지겨울 터. 그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그립단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영원초등학교에 4분의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아직 개학을 하지 않아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은 신학기인데도 사제 간에 대면조차 못하고 코로나19가 사라지길 기다린다.     20여분의 선생님들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영원면의 역사문화와 풍속, 그리고 고대문화유산과 인문학 등을 이해하고자 부족한 나를 초청, 1일 해설사를 부탁하니 기꺼이 수락하고 봄소풍 하듯 나섰다.   영원면 은선리 지역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마한, 백제부터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문화유산이 분포된 이른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소문났다.   영원면의 백제 역사문화와 정치, 너른 들판의 수리에 대한 환경, 개간과 수탈의 역사, 동학혁명의 배경과 참여에 대해 설명했다.          고려시대에는 삼별초군이 몽고군과 싸우다 밀려 대포(大浦)에서 조선(漕船)13척을 나포하여 도망갔다는 기록,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가뭄과 홍수, 제방의 축조와 유실 등에 대해 설명하니 짐짓 놀라는 모습이다.   탑립마을 앞 과거의 역로(驛路)와 영원역, 이 지역의 역참제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간재 전우선생과 양재 권순명 선생, 그의 제자였던 순창 훈몽재의 김충호 선생과의 학맥 등을 소개하고, 이 지역의 독립운동가인 구파 백정기 의사도 흑암리의 영주정사에서 간재 전우 선생에게 수학한 내용을 소개했다.   은선리 고분군(백제시대 굴식돌방무덤)답사에 앞서 지난 20여 년 전 천태산 일대에 분포된 고분군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 회고담을 들려주고 무심히 방치된 고분군이 10여 기라는 기록으로 시작해, 모 대학의 연구원들과 함께 275기를 공식 확인하여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것에 대해 감개무량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은선리 고분군(백제시대 굴식돌방무덤)은 '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워 이곳에 늙고 병든 부모를 유기했다' 는 구전 내용의 오해로 인해 '고려장터'라는 오명을 아직도 씻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전했다. 이는 학생들에게도 분명히 인식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        "굴식 돌방무덤에 대한 오해와 고려장터가 아니라는 근거"   1. 굴식 돌방무덤은 백제시대 그 지역의 유력자의 무덤이다.     부모를 유기한 곳으로 불리는 고려장터가 아니라는 것. 2. 부모를 봉양 못해 산속에 유기할 정도의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저 큰 무덤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3. 지금까지 조사된 분포지역에는     백제시대의 주요 거점이거나 성터주변에 발견된다는 점.     고려시대에 고려장이란 제도가 있었다면     왜 영원면 은선리 지역에만 유독 많이 분포되어 있고 타 지역에는 없는가? 4. 외지의 대학교수님들이 이 지역에 방문하여     이 고장의 고분군의 분포는 부여 다음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밝힌 점. 5. 간략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 도굴꾼들과 조선인 앞잡이들이     도굴을 위해 이 고분들은 부모를 버린 고려장터이니 훼손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에     현혹된 무지렁이들이 앞장서서 용돈벌이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 결론적으로 은선리 일대에는     청동기 유적과 마한. 백제시대의 유적이 분포한 바,     이곳은 고대로부터 지방행정의 중심이었고,     특히 백제 오방성(五方城) 중 중방(中方)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지방거점의 중심지로써 유력자들의 무덤인 것으로 밝혀졌던 것.         다음 차례는 지사리 고분군으로 이 고분은 분구묘로 마한시대의 고분으로 조사되었고 총 5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A형 고분은 일제강점기에 29호선 국도를 개설하면서 의도적으로 반파시켰다는 주민 증언을 인용해 설명했다. 원래 이 고분군은 여타 야산에 있는 문중산으로 보이는 평범한 고분군이었다.   10여 년 전 이 지역 시의원이 문중어른들을 설득하여 오늘날의 고분군으로 정비될 수 있었다. 또 은선리 굴식 돌방무덤군은 다른 성씨의 문중에서 탐방로 설치에 협조한 덕택이었음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백제 고사부리군의 관아터로 비정되는 은선리 토성에 올랐다. 성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영원면에는 과거 은선리 토성. 금사동 산성. 수성지(水城址). 은선리에 있었던 전선배미(戰船夜味)의 제언(堤堰)도 성터되었다 조사되었음을 설명하고 은선리 지역의 백제 지방도시 구성을 설명했다. 낯선 땅에 처음 부임하여 답사를 참여한 선생님들은 몇 마디나 이해했을지는 몰라도 임기 동안 가끔씩 이런 행사를 예년처럼 시행할 것이다. 영원초 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가끔씩 접했기에 어른들보다 이해가 빠른 면이 있다. 이런 부분을 교장선생님은 알고 계셨기에 오늘 행사를 주선한 것으로 안다.          우리 영원면은 20여 년 전부터 면장님이 새로 부임하면 기관장님들과 같이 탐방길을 답사한다. 이 지역에 부임하면 최소한 지역의 향토문화유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강조한다. 오늘 영원초등학교 이정화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전원 참여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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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9
  • [정읍시] 굴치 고갯길을 열어라, 수청저수지 너머 굴치(屈峙)를 찾아서
    1. 수청저수지와 굴치 정읍시 부전동과 칠보면 수청리를 연결하는 도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코스로 이루어져 드라이브코스로 좋은 곳이다.     수청저수지   1978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준공 저수량 464만 4,000t, 유역면적 1,270ha, 만수면적 40.3ha, 수혜면적 540.3ha 댐 길이 290m, 높이 30m 2015년 둑 높이기 공사   칠보산과 고당산 사이에 넓게 자리한 수청저수지는 저수지 아래를 공원으로, 둑 제방 좌우로 산책로를 조성하여 천천히 걸으며 저수지를 가득 채운 물과 주변 풍경을 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수청저수지는 칠보산과 고당산의 계곡수가 유입되는데 상류에 오염원이 거의 없어 물이 아주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첩첩이 쌓인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 또한 뛰어나다. 2018년 9월 6일에 정읍시에서는 이곳 수청저수지를 포함하여 저수지 5개소에 동자개·붕어 종자 20만 마리를 방류했다.     수청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 수청리에는 굴치 마을이 있었다. 굴치 마을은 본래 태인군 남촌일변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읍군 칠보면 수청리에 편입되었다.     굴치 屈峙 굽을 굴, 산 우뚝할 치     굴치라는 이름은 순창군으로 넘어가는 골짜기가 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굴치 마을은 굴치(골짜기) 아래에 있던 마을이다.    고당산(638m), 칠보산(472m), 까치봉(461m), 장태봉(336m)등의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기에 지형적 이점을 활용해 1986년에 수청저수지를 만들면서 굴치 마을은 수몰되었다.    굴치는 정읍시의 칠보면 수청리 굴재 마을과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의 오룡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모양새가 굴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동국여지지』에 "굴령(屈嶺)은 (태인)현의 동남쪽 30리에 있는데, 동으로 운주산에 접해 있고 남으로는 정읍의 내장산에 연결되어 있다. 길이 있는데 깊고 바위가 험하다."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또한, 『여지고』에는 "굴치(屈峙)는 (중략) 굴령(屈嶺)이라고 하였다."고 수록되어 있다.   『지승』에 굴치가 순창과의 경계부, 칠보산 북쪽에 험액(險阨: 길이 험하고 막혀 좁다는 뜻)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광여도』(태인)와 『해동지도』(태인) 등에도 굴치(屈峙)로 표기되어 있다.(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2. 굴치와 모은 박잉걸(朴仍傑)   1) 굴치 박잉걸 치도비(治道碑) 정읍 수청리에서 순창 학선리로 넘나드는 굴치(屈峙) 계곡의 높이 5m, 폭이 3m 쯤 되는 이 거대한 바위에 박잉걸의 적선을 송덕하는 초상화(肖像畵)와 치도비가 암각(岩刻)되어 있다.    박잉걸 치도비가 새겨진 바위. 이 바위는 역암층으로 비교적 크기가 작은 자갈들이 바위 하단부에 드러나 있다. 치도비를 가까이 본 모습(실제로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굴치 박잉걸 치도비 팩트 체크!!"   ① 『굴치 박잉걸 치도비』는 칠보면 수청리에 있다. 1746년(영조 22)에 칠보면 반곡리에서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로 통하는 굴치재의 중복에 북편으로 높이 5.6m 가량, 둘레가 10여 m 쯤 되어 보이는 바위의 서남면, 높이 2m 바위 면에 새긴 것이다. 바위 면에는 박잉걸의 상을 조각하고 아래에 비의 형태를 양각하고 비문을 새겼다. 「상지이십일년 을축팔월 정려, 효자 밀양박공잉걸모은당치도비 건륭십일년 병인삼월 일(上之二十一年 乙丑八月 旌閭, 孝子 密陽朴公仍傑慕隱堂治道碑 乾隆十日年 丙寅三月 日)」이라 새져져 있다.   ② 『굴치 박잉걸 수도비』는 굴치 박잉걸 치도비 옆에 나란히 자리한다. 이 수도비는 1767년(영조 43)에 만들었으며, 정해 오월 일 사인 박잉걸수도비 순창, 태인 병립(丁亥 五月 日 士人 朴仍傑修道碑 淳昌, 泰仁 竝立)이라 새겼으니 그 옆의 치도비 보다 22년 뒤에 새겼다.   ③ 『구절재 박잉걸 치도비』는 산내면 능교리 소재, 1745년(영조 21) 건립, 비문은「통훈대부박잉걸 치도선시 불망비 건륭십년을축동립(通訓大夫朴仍傑 治道善施 不忘碑 乾隆十年乙丑冬立)」라 하여 1745년 겨울에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비의 후면은 마멸로 인해 판독이 불가하다. 구절재는 한자로 구절치(九節峙)라 하며 칠보 산내면 경계로서 칠보 쪽에서는 190여 m를 올라간다. 구절재에서 소군실 마을로 진입하는 지점 근처 도로변에 있다.       "박잉걸 치도비 일화"   굴치 골짜기에 있는 박잉걸 치도비에는 다음의 일화가 있다. 단기 3909년(서기 1676) 조선조 숙종 때 태인현 백암리에서 태어난 박잉걸이라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만석 거부가 되었으나, 환갑 되던 해에 온몸에 비늘이 돋는 병을 앓게 되었다. 돈도 소용없었고 노력도 소용없었다.   산 너머 마을로 장가간 아들이나 보고 죽겠다고 굴치라는 고개를 넘는데, 마주친 수염 하얀 노인이 이리 말하는 것이었다.   "적선(積善)을 하시게."   그 뒤로 굴치와 구절재의 길을 넓히고 많은 적선을 하였으며 피부병도 완쾌되어 90세까지 장수하였다. 박잉걸은 이밖에도 홍수 때마다 무너지는 다리를 보수하고 마을 어귀에 움막을 짓고 옷가지와 신발을 걸쳐놓아 아무나 가져가게 만들었다.   마을 남정네가 죽어나가고 흉사가 잇따르자 당산나무 아래에 잘생긴 남근석(男根石)을 세워 재앙을 막았다.   박잉걸의 후손들은 효자였다. 5대손인 박덕래는 호랑이를 감동시켜 타고 다녔다. 호랑이에 씌웠던 굴레와 가죽끈이 가문에 남아 있다. 증손자 박연진(朴延鎭)은 효자이기도 했고 도학에 정통한 학자이기도 했다. 일문삼효(一門三孝), 삼대에 효자를 낳은 가문이었다.     3. 수청저수지 너머 굴치를 찾아서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와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오룡마을을 연결하는 굴치는 예전에 순창군 쌍치면 사람들이 정읍시장을 가기 위해 짐을 이고 지고 넘나들던 옛길이요, 험난한 고갯길이다.     오룡마을에는 천주교 공소가 있다. 정읍에도 천주교 박해를 피해 교인들이 산골로 피신하여 지어진 공소가 많은데 오룡마을 공소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골로 교인들이 숨어들어 세운 곳이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하나의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고당산 동편 굴치를 찾아서 - 멀리 보이는 산이 고당산 수청저수지에서 바라본 고당산   굴치 고갯길은 수청저수지를 통과해야 되고 옛길은 사라져서 접근이 곤란한 곳이다.   수 년 전에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오룡마을 쪽으로 해서 접근을 시도한 적이 있다. 정읍의 지리학자인 박래철선생님(현 정일여중 교사)과 초여름에 쌍치면 오룡공소 뒤편으로 해서 고개를 넘어 골짜기를 내려가 박잉걸 초상화와 치도비를 보려고 했으나 가시덤불이 우거지고 뱀이 나타나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있다.   그밖에도 수 년전에 수청저수지가 거의 말랐을 때 저수지 안쪽 고당산 아래로 접근하려고 했으나 그 또한 쉽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 답사에서는 정읍과 정읍 인근의 산을 주로 걷는 산행 모임의 회원 두 분과 처음엔 수청리 청광마을 쪽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제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고 길을 막아 놓은 것도 있고 해서 다시 돌아 나와 수청저수지 제방 위로 난 길을 걸어서 무작정 산비탈로 새롭게 진입했다.   굴치까지 가는 건 사실 마음만 앞설 뿐, 길이 없는 산 속을 뚫고 가야해서 쉽지 않았다. 70도 각도로 깎아지른 작은 산봉우리 두 개를 넘고 다시 그만큼의 거리를 깎아질러 내려갔더니 갑자기 들리는 솔바람소리 그러나 그건 물소리였다.   물소리가 난다는 것은 그곳에 계곡이 있다는 알람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내려가 보니 두 줄기 물이 합쳐져 하나로 흐르는 계곡이 아름답고 물은 더 없이 맑았다. 그 골짜기는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으로 주변엔 곡간농업의 흔적인 다랭이논이 층층을 이루고 있어 반갑고 신기하였다.   이 다랭이논들은 골짜기의 돌을 이용하여 성벽 같은 논둑을 높이 쌓고 평탄하게 땅을 골라 만든 논으로 협곡을 이용한 곡간농업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지만 암각 치도비 아래로 여러 다랭이논들이 목격된다.     성벽처럼 논둑을 높이 쌓은 다랭이논의 자취   계곡수의 합수지점에서 더 올라간 곳에는 그 동안 글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모은 박잉걸 선생의 치도비(굴치의 고갯길을 닦은 일을 기념하는 비)가 눈앞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그 바위 위는 판판하고 글도 새겨진 것으로 보였으나 올라갈 수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 굴치 정상을 향해 골짜기를 헤치고 올라갔다. 굴치 골짜기 가득한 돌덩어리와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헤쳐 나간 끝에 분수계를 지나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오룡마을에 도착했다.   중간에 하산하신 김규완 선생님(전 신태인 왕신여고 역사교사)에게 전화하여 자동차를 순창 쪽 하산 지점으로 와주기를 부탁드린 보람으로 쉽게 정읍시내로 돌아와 답사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굴치 고갯길을 걷는 일은 초목이 무성한 여름에는 도저히 어렵고 지금과 같은 초봄이나 겨울철에 가능하다.   여름철에는 특히 뱀이 나타날 염려가 많은 데다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수청리 쪽으로 등산로 혹은 임도를 개설한다면 굴치 고갯길이 트레킹 코스로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은 박잉걸 치도비가 있는 바위에는 초상화도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바위 위에 새겨진 글씨(암각서)가 있을 가능성도 있어 다음에 순창 오룡마을 쪽으로 해서 다시 가볼 생각이다. 오룡마을에서 치도비가 있는 곳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한 가지 아쉬운 일은 순창 쪽에 있는 굴치 분수계 지점 도로변에 폐비닐 등이 방치되고, 정읍 쪽으로 조금 내려선 지점에는 근래 새로 지은 축사가 있어 저수지로 축산 오수가 흘러들 가능성이다. 수청저수지는 상수원 보호구역은 아니지만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굴치는 호남정맥 정읍 구간의 이른바 “정읍알프스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구간이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4계절 관광지 정읍을 위한 전략적 접근으로 호남정맥의 정읍 구간을 정읍알프스라 칭하여 명품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산은 모악산 국사봉에서 묵방산, 성옥산, 왕자산, 소장봉, 노적봉, 국사봉, 고당산, 추령봉, 내장산, 입암산을 거쳐 방장산까지다.’ 한편 전북 알프스 프로젝트도 있다. 전라북도는 전북연구원과 함께 ‘노령산맥 관광벨트 조성 사업’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2018년 전라도 개도 천년을 기념해 호남권 연계 협력 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호남정맥권 전북 정읍시·순창군·고창군, 전남 담양군·장성군 등 2개 도 5개 시·군을 연계해 호남의 알프스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1000억 원을 투입해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노령산맥(호남정맥)을 연계한 관광벨트가 조성되면 호남판 알프스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실제적으로 나타난 것이 없다.   호남정맥 정읍구간은 많은 산악인들이 걷고 오르는 산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산행에 도움을 줄 별다른 시설이 없고 끊긴 구간도 자주 나타난다. 일부 구간은 산악인들이 등산로로 다듬어지지 않은 산비탈을 치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정읍 알프스라는 이름과 사업 구상은 고정된 것은 아니다. 명칭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호남정맥 정읍구간 산행 후기를 읽다보면 호남정맥 정읍‧순창 구간에 정읍시와 순창군이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힐난도 나타난다.   정읍시 사계절 관광을 위해 정읍 알프스 프로젝트 구상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번 굴치 답사를 통해 그 구상의 일단에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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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조선왕조실록 이안길 걷기
          조선왕조실록 이안길 걷기 2020.02.18~19 정금성, 박래철, 김용련, 장은실, 유석기, 정읍문화원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조선왕조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며, 정치, 경제, 외교, 군사, 풍속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백과서로서 1997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었다.   편찬된 실록은 4부를 간행하여 춘추관, 성주, 충주, 전주사고에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전주사고의 실록을 제외한 춘추관, 성주, 충주사고에 보관중이던 실록은 모두 없어지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 유일하게 정읍의 선비 안의.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냈다.       정읍에 살던 안의, 손홍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전주로 진격하고 있다는 급박한 소식을 듣고 62궤짝에 이르는 전주사고의 실록과 태조어진을 가솔들을 이끌고 내장산으로 이안하여 온전하게 지켜냈다.   현재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는 것은 정읍 선비 안의와 손홍록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이안길을 함박눈이 내린 매서운 날 걷게 되었다. 2020년 2월 18일 아침 8시 30분 경기전을 출발하여 저녁 6시30분까지 풍남문==>평화동 ==>완주군 구이면==> 정읍 산외면까지 30여 km를 걸었다.           걷는 틈틈이 정읍중학교 사회선생님이신 박래철 선생님의 해설이 곁들어져 힘든 줄 모르고 걷기를 계속하였고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백화수퍼에서 막걸리 한잔은 잊을 수 없다.           첫날 산외면 소재지에 위치한 섬진강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였고 저녁을 먹은 후 피곤한 기색 없이 정읍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꽃피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 30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카페 팔롬비니, 섬진강 캠핑장..... 바람은 좀 매서웠으나 우리의 걷기는 계속되었다. 정읍 산외면에서 내장사까지 28.93km   아침 7시30분에 산외면에서 출발하여 칠보면에서 아침을 먹고 칠보 수곡초 ==> 수청리==> 선돌 ==> 부전동 산모퉁이==> 정읍시립박물관   걷는 틈틈이 역사적 장소에 대한 해설이 있고,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걷는 내내 우리 4명의 침목과 우정은 다져졌다.   점심을 먹고 내장저수지 근처에서 석기가 결합해서 마지막 힘을 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는 느려지고 정읍문화원 김용현 사무국장의 무릎은 어제부터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매표소와 내장사를 지나 내장사용굴을 1km 남겨두고 걷기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씩 어두어질 무렵 드디어 내장사 용굴암에 도착했다. 어제 8시30분부터 경기전에서 출발해 65km를 걸어 오늘 오후 5시 45분 내장사 용굴암에 도착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걷기에 함께해서 영광이었고 끝까지 함께한 5명의 얼굴엔 뿌뜻함이 담겨있었다.     <덧붙임> 정읍선비 안의와 손홍록 선생이 조선왕조실록을 옮긴 날(6월 22일)을 정부에서 문화재 지킴이날로 제정하여 2019년 정읍내장사에서 전국 문화재지킴이의 날 행사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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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5
  • 여행과 크리에이터 토크 - 하와이하다
        여행과 크리에이터 토크 "하와이하다" 방경은, 이진영, 장유미, 최영미, 이채원, 유채림, 이선희, 김소연, 남소영, 현애남, 박서연, 이진주, 김선영         ‘니가 가라 하와이’ ‘천당 아래 999당’ ‘지상 최고의 관광지, 신혼여행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할 여행천국’ 하와이에 따라오는 다양한 수식어는 그야말로 최고의 관광지, 누구나 꼭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이자 휴식과 힐링의 장소입니다. 하와이에 거주하며 현지 방송국의 뉴스 앵커이자, 하와이관광청의 공식 크리에이터로서 ‘알로하 리포트’의 크리에이터인 이진영 작가가 정읍에서 하와이 여행과 현지의 삶, 그리고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법 등을 이야기 하는 토크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이진영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함께 감상하고, 하와이 이곳 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는 듯한 여행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카약의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 투명한 바닷물에 스노쿨링과 돌고래와의 수영, 요트 여행까지 비록 짧은 영상이지만, 하와이 여행을 맛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진영 작가가 말하는 하와이는 한마디로 ‘알로하 스피릿’이 충만한 곳입니다. 알로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대상에 대한 아무 제한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진영 작가도 처음에 하와이에 와서는 알로하는 그저 말뿐인, 어떤 브랜드명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와이를 처음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겠지요?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와이에 살면서 느끼게 된 것은 하와이 사람들에게 알로하는 어떤 정신적인 뿌리이면서 사회 전체에 흐르고 있는 DNA라는 것입니다. 일례로 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에서 조차 알로하 정신과 알로하 정신을 담은 행동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교육한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하와이에 도착하면 누구나 느끼는 ‘무지개’같은 사람들의 미소와 진심어린 환대, 이른바 알로하 스피릿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더 나아가 하와이를 특별한 곳, 파라다이스이자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나 온난한 기후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4권의 하와이 여행서와 한 권의 여행 에세이를 낸 작가로서 이진영 작가에게 컨텐츠 제작과 글쓰기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컨텐츠를 만들려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보는 게 좋겠다는 답변과 함께 여행 컨텐츠 제작과 영상을 만들 때의 구체적인 팁이 이어졌습니다. 짧은 영상일지라도, 기승전결, 혹은 편집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전 기획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에 많은 참석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행사 중간에는 훌라 댄스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알로하 훌라’ 댄스팀은 현애남 단장님의 지도하에 정읍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훌라 댄스팀입니다. 하와이의 전통춤인 훌라는 수화와 같은 표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하늘, 별, 바다, 바람 등 하와이의 자연을 손과 발, 시선과 리듬으로 전하고 노래하는 춤입니다. 진지한 표정과 절도있는 동작, 따뜻한 미소로 이어진 훌라 댄스 공연은 다시 한 번 알로하 스피릿을 어반피크닉플레이스 곳곳에 퍼트렸습니다.   세계 전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 관광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물론 빼어난 자연환경, 즐길 거리, 쉴 곳, 특별한 먹거리도 필요하겠지만, 외부인을 향한 진정한 환대, 그 무조건적인 따뜻함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따뜻한 환대와 환영이 정읍 곳곳을 덥히고, 이곳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녹이는 장면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갑자기 멀리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온 따뜻한 바람에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문화스토리
    •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2020-02-25
  • 종이 위에 펼쳐진 영혼의 울림, 서예 정금성 붓가락전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옛 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한 이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를 것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울리에 풍월주인 되었어라 - 선비의 고장 정읍 태산에서 정극인이 쓴 「상춘곡」 일부   정읍은 사실 저평가된 선비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이항 선생은 정읍 남고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다. 남고서원을 포함하여 칠보 태산, 현재의 태인을 중심으로 선비들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정읍은 곳곳에 글씨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현충사에 강암 송성용 선생의 필체, 진산동 영모재 방 안 쪽의 수려한 필체의 글이 감동이다.     정읍 산천 곳곳 새겨진 글씨는 뭉클하다. 한자를 모른 들 무슨 대수랴. 그림을 그리듯 쓴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붓으로 쓴 글씨만 감동이 잇는 것은 아니다.   먹과 붓이 아니어도 손으로 쓴 글씨는 표정이 있고 마음이 담겨있다. 글씨는 사람을 닮기 마련이다.   정읍에는 문화시설, 유적지가 아니어도 음식점과 공방, 가게 등등 서예나 손글씨가 걸려있는 곳이 많다. 흐르듯 춤추는 글씨, 그 집 주인의 얼굴을 닮았을 것이다. 사람 사는 모양이 제 각각이듯 제 각각의 손글씨가 눈길을 잡아 끈다.         지난 1월 1일부터 31일까지 도심 #문화집강소#문화놀이터 에서는 "정금성 붓가락전"이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그 동안 30여년의 필력을 선보이고 문화놀이터를 활성화하며 전시를 통해 얻어진 판매 수익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후원하고자 함이었다.   해금 연주로 시작한 정금성 붓가락전 열린마당(1월 17일 저녁)에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전시를 축하하고 소박하지만 흥겨운 한 때를 보내었다.           문화놀이터는 정읍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며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다. 예술가와 시민의 문화거점 공간이다.   20년 3월부터는 시민강좌가 개설되어 서예&캘리, 연극, 해금연주, 바리스타교육, 타로카드 등등의 강좌를 듣는 곳으로 활용될 것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기증받은 도서를 모아 작은 도서관도 운영할 예정이며, 동아리, 소모임의 행사장소로도 대여가 가능하다. 또 플리마켓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구상중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발전해 나가는 문화놀이터가 되길 바라며 정읍시민들! 이제 문화놀이터에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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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접주 활동보고서
    2020-02-10
  • 한국의 서원, 무성서원 풍류정신
      2019년 7월 6일 무성서원을 포함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촬영 - 게티이미지뱅크   무성서원은 1615년에 서원으로 문을 열어 2015년에 만 400주년을 맞이했다.   1696년 조선 숙종 22년. 사액을 받아 무성서원이 되었다.   ※ 사액 - 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던 일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촬영 - 게티이미지뱅크   무성서원의 사당, 태산사에는 다른 서원의 주벽과 달리 고운 최치원을 비롯하여 주로 이 고을 수령을 지낸 분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촬영 - 게티이미지뱅크   향교는 고을 중심지에 위치하는 반면, 서원은 고을과 뚝 떨어져 공부와 수양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있어 다른 서원들과는 다르다.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촬영 - 게티이미지뱅크   무성서원 강당을 보면 가운데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툭 틔어있어 내삼문의 태극 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움의 담백함" 우리 전통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조형이다.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촬영 - 게티이미지뱅크   1,100여 년 동안 고운 최치원의 풍류 정신을 이어 성리학적 유토피아를 규현해 온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이제 이 시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 새로운 의미의 서원으로 자리매김 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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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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